이 글은 스펄전의 1859·1868·1869·1887년 설교와 1865년 연합기도회 기록을 대조하여 작성한 독립적인 한국어 읽기자료입니다. 중심 자료는 시편 85편 6절을 해설한 1887년 「부흥을 위한 기도」입니다. 저자의 원문 설교와 당시 보고, 현대 교회를 위한 편집자의 해석과 적용을 구분했습니다. 단일 설교의 직역이나 축약본은 아닙니다.
과거의 부흥을 기억하는 일은 오늘의 기도로 이어져야 한다
1859년 7월 17일, 찰스 해돈 스펄전은 시편 44편 1절을 본문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설교했습니다. 시편 기자가 조상들에게 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회상하듯, 스펄전도 성경과 교회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를 되새겼습니다. 그의 관심은 과거 부흥의 놀라운 규모를 감상하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오늘의 교회를 위해서도 그분께 간구해야 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지나간 시대를 부러워하면서 현재의 교회는 체념하는 태도야말로,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면서도 그분의 능력을 실제로 신뢰하지 못하는 모순입니다.
스펄전은 그 설교에서 미국의 기도운동과 북아일랜드의 각성 소식을 함께 전했습니다. 뉴욕에서 한 사람이 작은 기도모임을 시작한 뒤 참석자가 늘어났다는 이야기와 벨파스트·밸리메나에서 회개와 기도가 이어졌다는 보고를 소개했습니다. 다만 이것은 스펄전이 당시 접한 소식과 방문자의 증언을 청중에게 전달한 것이지, 그가 모든 회심 사례나 집회 규모를 독립적으로 조사한 결과는 아닙니다. 특히 그가 언급한 특별한 신체적 반응이나 극적인 변화는 당대의 관찰과 해석을 구별해 읽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 설교의 권면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이야기는 우리를 구경꾼으로 남겨 두지 않고, 감사와 찬양에서 현재의 간구로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본문 근거: [1]
교회의 침체 앞에서 먼저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1887년 8월 14일, 스펄전은 시편 85편 6절을 본문으로 「부흥을 위한 기도」를 전했습니다. 그는 회중이 실제로 이 기도를 드리는 것이 자신의 설교를 듣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며, 설교의 목적 자체가 기도로 이어지게 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이 기도를 드려야 할 때를 하나의 위기 상황으로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은혜를 기억할 때, 교회의 형편이 어두워 보일 때, 성도들이 영적으로 무기력해질 때, 성실한 사역에 눈에 띄는 열매가 없을 때, 믿음의 길에서 멀어지는 이들을 볼 때 모두 이 기도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구별이 있습니다. 신자의 열심이 언제나 똑같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곧 영적 죽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무기력함을 자연스러운 일로 방치하거나, 열매가 더디다는 이유로 말씀 사역을 포기하는 태도도 옳지 않습니다. 교회는 낙심을 하나님께 아뢰고 다시 살리시는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스펄전은 기도의 대상을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만 돌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목회자부터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설교자도 성령의 은혜가 없으면 무감각해지고, 말씀을 전하는 책임을 습관적으로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인들에게 설교자를 비평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권했으며, 장로와 집사, 각종 사역자와 모든 교인, 신앙이 식어 가는 성도들을 함께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부흥을 구하는 기도가 교회에 더 많은 사람을 보내 달라는 요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믿음으로 감당하도록 구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침체의 원인을 언제나 특정 목회자나 교인에게 돌리는 비판과도 다릅니다. 우리는 한 공동체의 상태를 완전히 알지 못하며, 열매의 속도만으로 그 신실함을 재단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에게 맡겨진 말씀과 예배, 사랑과 섬김을 돌아보고, 잘못과 태만이 드러나는 곳에서는 핑계보다 회개로 응답해야 합니다. 부흥을 위한 기도는 다른 사람을 향한 불평을 하나님께 드리는 탄원으로 바꾸고, 그 탄원을 다시 자기 성찰과 순종으로 이어 주어야 합니다.
본문 근거: [2]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에 더욱 간절히 구한다
스펄전이 1887년 설교에서 밝힌 부흥기도의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의존입니다. 어떤 집회나 조직, 뛰어난 설교자도 영적인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일에는 정당한 자리가 있지만, 그 과정 자체를 부흥을 일으키는 장치로 여긴다면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을 인간의 기술로 대체하려는 셈입니다.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고 돌아오며 성도가 새롭게 되는 일은 궁극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역사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흥을 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노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하지 않고, 그 노력이 참된 열매를 맺도록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대한 확신입니다. 교회가 심각한 침체 가운데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다시 새롭게 하실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부흥을 구하는 기도는 교회의 현재 형편보다 그 교회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크게 봅니다. 그러나 이 확신이 특정한 날짜까지 가시적인 결과를 반드시 얻는다는 보장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있다는 믿음과, 하나님께 응답의 형식과 시기를 명령할 수 있다는 생각은 구별해야 합니다. 스펄전의 강한 기대와 권면을 기도법의 성공 공식으로 바꾸는 것은 그의 하나님 중심적 논지를 거꾸로 읽는 일이 됩니다.
셋째는 끈질긴 간구입니다. 스펄전은 교회의 형편을 걱정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태도를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소수의 신자라도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하고, 쉽게 낙심하지 말며, 교회의 갱신을 지속적으로 구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이 끈질김은 하나님을 설득해 그분의 뜻을 바꾸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분의 자비와 능력을 믿기 때문에 거듭 나아가는 믿음의 태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권과 부흥을 위한 열렬한 기도는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교회를 살리실 수 있기에, 교회는 바로 그 하나님께 끈질기게 기도합니다.
본문 근거: [2]
말씀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가 함께 기도한다
1859년 설교에서 스펄전은 자신이 힘을 다해 복음을 전했음에도 여전히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회중에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설교의 가치를 낮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더라도 그것을 듣는 마음에 생명과 믿음을 일으키시는 분은 성령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설교자는 성경을 충실히 연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분명하게 전해야 합니다. 동시에 자신이 전하는 말씀의 열매를 자기 언변과 열심에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 역시 설교를 평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목회자가 진리를 바르게 선포하도록, 듣는 이들이 진실하게 회개하고 믿도록, 이미 믿는 이들이 말씀에 순종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1868년의 설교 「기도회」에서 스펄전은 사도행전의 여러 장면을 따라 성도들의 공동 기도가 지닌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낙심한 교회가 함께 위로를 구하고, 핍박받는 교회가 담대함을 구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해 중보하고, 선교를 위해 일꾼을 세워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의 논의에서 기도회는 설교나 행사에 사람들이 더 많이 오도록 돕는 부수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께 의지하며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의 자리입니다. 여기서 신약의 오순절 사건을 오늘날 교회가 반복해서 만들어 내야 할 집회 방식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께서 이미 교회에 주어지셨다는 사실을 믿으면서도,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와 담대함과 거룩함을 계속 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스펄전의 실제 목회와도 연결됩니다. 1865년 1월 런던의 여러 교회가 함께 모인 연합기도회에 관한 당시 보고를 보면, 목회자와 직분자를 위한 기도, 죄의 고백,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한 권면, 신자와 불신자를 위한 간구가 이어졌습니다. 2025년 제프 창이 소개한 이 자료는 1865년의 『The Sword and the Trowel』에 실린 기록을 바탕으로 합니다. 참석자들이 느낀 깊은 감동을 기록으로 존중할 수 있지만, 그 감정이나 참석 규모가 곧 부흥의 진위를 판정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함께 모인 교회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목회와 선교의 실제적인 필요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았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근거: [1] · [2] · [3] · [5]
큰 부흥을 사모하면서 작은 순종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부흥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일상의 신실함을 약화할 수도 있습니다. 스펄전은 1869년 「날마다 유익한 사람이 됨」이라는 설교에서, 과거 부흥의 외적인 모습을 그대로 다시 기대하다가 하나님께서 이미 맡기신 일을 소홀히 할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우리는 커다란 집회, 탁월한 설교자, 갑작스러운 다수의 회심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역사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펄전은 성령의 역사가 거센 강물처럼 두드러질 수도 있고, 땅을 적시는 조용한 이슬처럼 나타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기대한 장면이 아니라는 이유로 실제로 주어지는 은혜를 작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가 요한복음 1장 42절에서 주목한 인물은 형제 시몬을 예수께 데려온 안드레였습니다. 안드레의 행동은 거대한 운동을 조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한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부흥을 구하는 기도는 가정과 이웃, 지역교회에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랑과 말씀의 섬김을 밀어내지 않습니다. 자녀의 믿음을 위해 기도한다면 성경을 가르치는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하고, 목회자의 사역을 위해 기도한다면 말씀을 기꺼이 듣고 순종해야 하며, 전도를 위해 기도한다면 실제로 이웃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순종이 부흥을 얻는 대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이미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근거: [4]
부흥의 가장 깊은 열매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스펄전이 1887년 설교에서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시편 85편 6절의 목적절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다시 살리셔서 그 백성이 하나님을 기뻐하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 부흥에는 회심과 기도, 전도와 섬김의 열매가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펄전은 그 모든 활동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그분 자신을 기뻐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 이것이 부흥의 가장 성숙한 열매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반응만을 성과로 계산한다면 교회의 갱신을 그 중심에서부터 놓치기 쉽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 감정이 고조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펄전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뿐 아니라 공의와 진실하심, 변함없으심도 기쁨의 이유로 말했습니다. 특히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할 때 그리스도의 속죄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죄의 심각성을 외면한 막연한 낙관이나 감정적인 고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 전체를 신뢰하고 즐거워하는 기쁨입니다. 부흥을 위한 기도는 결국 그리스도의 구속과 하나님께 대한 예배로 깊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가 부흥을 구할 때 평가해야 할 것도 분명해집니다. 참석자가 늘거나 모임의 열기가 높아지는 일이 반드시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참된 갱신이 입증되지는 않습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던 이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자라며,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이 지속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는 부흥의 모든 열매를 즉시 측정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가 무엇을 궁극적인 소망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기준입니다.
본문 근거: [2]
오늘 우리 교회는 무엇을 구할 것인가
부흥을 위한 기도는 특별한 시대의 장면을 재현해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현재의 교회에도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과 말씀을 향한 갈망, 죄를 미워하고 돌이키는 정직함, 복음을 전할 담대함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주시기를 간구하는 일입니다. 목회자에게는 진리를 충실히 전할 능력을, 직분자와 성도에게는 사랑으로 섬길 힘을, 낙심한 사람에게는 다시 일어설 은혜를,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참된 회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냉담함을 고백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변화만을 바라보는 기도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교회는 이 간구를 일상의 순종과 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을 준비하고 듣는 일, 함께 기도하는 일, 잘못을 바로잡고 화해하는 일,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을 돌보는 일,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성실히 감당하면서 그 모든 수고에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로 특별한 부흥을 보장받을 수는 없으며, 눈에 띄는 부흥이 없다고 해서 성령께서 교회를 떠나셨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영적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은 기도를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더욱 깊이 간구할 이유입니다.
스펄전에게서 배울 부흥기도의 중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만이 교회를 살리실 수 있으므로 그분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능력이 있음을 믿으며, 맡겨진 일을 충실히 행하는 가운데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바라보는 최종적인 열매는 교회의 명성이나 규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본문 근거: [1]–[4]
참고한 설교와 역사 자료
- Charles H. Spurgeon, “The Story of God’s Mighty Acts,” 설교 제263호, 1859년 7월 17일, 시편 44:1. 원문:
- Charles H. Spurgeon, “A Prayer for Revival,” 설교 제2426호, 1887년 8월 14일 설교·1895년 간행, 시편 85:6. 원문:
- Charles H. Spurgeon, “Prayer-Meetings,” 1868년 8월 30일 설교·1914년 간행, 사도행전 1:14. 원문:
- Charles H. Spurgeon, “Every-Day Usefulness,” 1869년 2월 14일, 요한복음 1:42. 원문:
- Geoff Chang, “The United Prayer Meeting of 1865,” *The Spurgeon Library*, 2025년 1월 31일. 1865년 *The Sword and the Trowel*, 67–70쪽에 실린 연합기도회 보고를 소개함.
편집·사료 주의: 스펄전이 1859년 설교에서 언급한 미국·아일랜드 부흥 사례와 그가 들은 회심 보고는 당대의 증언으로 소개했습니다. 특별한 신체 반응이나 전해진 수치를 모두 역사적 확정 사실로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1865년 연합기도회에 관한 참석자의 영적 평가 역시 역사적 증언과 신학적 판정을 구별해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응답에 관한 본문의 구별, 오순절의 단회성과 현재 교회의 기도에 관한 설명, 현대 교회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은 원문을 토대로 한 편집자의 해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