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교회가 부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합니까? 예배당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 뜨거운 찬양과 열정적인 설교, 수많은 회심자와 새롭게 시작되는 사역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은 감사할 만한 은혜의 열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이고 종교적인 열기가 높아졌다는 사실만으로 교회가 참으로 살아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사람이 모여 감격했던 집회가 끝난 뒤, 정작 사람들의 신앙과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남지 않았다면 그것을 부흥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참된 부흥은 단순히 교회에 활기가 넘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권위를 얻고,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시며,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고, 성도들이 거룩함과 사랑 안에서 새로워지는 일입니다. 그 변화는 설교와 예배에서 시작되어 우리의 일상과 가정, 이웃과의 관계에까지 미쳐야 합니다. 부흥이 참되다면 그 흔적은 집회가 끝난 뒤에도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일시적인 감격이 아니라 지속적인 믿음과 순종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흥을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부흥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일에는 소홀하지 않습니까? 교회의 여러 활동 가운데 기도회를 가장 쉽게 줄이거나 없앨 수 있는 모임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이 적으면 그 모임에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처럼 여기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교회가 자신의 영적 무능력을 진실로 깨닫는다면 기도의 자리를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두세 사람이 모인 작은 기도회도 결코 하찮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형편이 어렵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면, 오히려 뜻을 같이하는 몇 사람이 다시 모여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기도회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종교적 열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깊고 오래도록 새롭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교회에는 무엇이 회복되어야 할까요?
1. 성령의 능력이 다시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에는 설교가 있고, 성경공부가 있으며, 여러 사역과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사람들을 교회로 초대하며, 효과적인 목회와 전도 방법을 연구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수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자라도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없으며, 아무리 잘 조직된 교회라도 죄인의 마음을 거듭나게 할 수 없습니다. 굳어진 마음을 깨뜨리고 하나님께 반역하던 사람을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반드시 눈에 띄는 특별한 현상이 나타나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놀라운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완고한 마음이 무너지고, 죄를 사랑하던 사람이 자신의 죄를 미워하며, 예수 그리스도께 무관심하던 사람이 그분을 자신의 유일한 구주로 믿게 되는 일입니다. 아무리 권면해도 변하지 않던 사람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오랫동안 냉담했던 신자가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보다 더 소중한 변화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종종 강렬한 감정이나 특별한 집회 분위기와 혼동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은 사람에게 감격과 기쁨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큰 소리와 뜨거운 분위기가 반드시 깊은 영적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감정은 순식간에 고조되었다가 사라질 수 있지만, 성령께서 말씀으로 새롭게 하신 마음에는 지속적인 열매가 나타납니다. 죄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새로운 소원이 생깁니다. 교회가 사모해야 할 성령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변화입니다.
교회가 다시 살아나기를 원한다면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 없이도 교회생활을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설교를 준비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얼마나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들으면서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깨뜨리고 삶을 변화시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까? 전도를 하면서 사람의 설득력보다 죄인의 마음을 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더 깊이 의지하고 있습니까?
교회는 사역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능력 없이도 교회의 활동은 계속될 수 있지만, 성령의 역사 없이는 참된 영적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종교적 활동만이 아니라 그 모든 사역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2. 복음의 진리가 다시 분명하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이야기만 전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복음의 중심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분의 거룩하심과 공의를 말하지 않고, 인간의 가능성을 강조하면서도 죄와 타락의 심각성을 설명하지 않으며, 예수님의 아름다운 가르침을 소개하면서도 그분의 십자가와 대속을 분명하게 선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겉으로는 여전히 기독교적인 표현을 사용하지만, 실제로 죄인을 구원하는 복음의 내용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교회에 복음의 언어가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복음의 진리가 충실하게 보존되고 있다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죄와 은혜, 구원과 믿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익숙한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의미를 성경과 다르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단순히 심리적인 불안이나 부족한 자기 확신으로 바꾸어 설명하고, 구원을 인간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을 구속하신 구주가 아니라 훌륭한 도덕적 스승으로만 소개한다면 복음의 가장 중요한 진리가 사라지게 됩니다. 성경의 표현을 사용한다고 해서 언제나 성경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선포하는 복음은 인간의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드는 조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 관계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죄는 단순히 고쳐야 할 나쁜 습관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아야 할 반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성령께서는 죄인을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믿게 하십니다. 인간은 자신의 공로나 결심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 복음의 진리가 분명하게 선포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리스도가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타락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절실한지 깨달을 수 없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얼마나 놀라운 구원의 사건인지 알 수 없습니다. 죄인의 영적 무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성령의 중생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도 가볍게 여겨집니다. 복음에서 사람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진리를 제거하면 복음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정작 죄인을 구원하는 복음의 영광은 가려질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시대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람들의 실제적인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성경의 가르침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이 원하는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충실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거룩하심, 그리스도의 대속과 성령의 중생이라는 복음의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참된 부흥을 사모한다면 먼저 우리의 강단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여전히 모든 가르침의 최종적인 권위로 존중받고 있습니까? 설교는 인간의 경험이나 사상을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까? 교회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지 묻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전하고 있습니까?
교회가 다시 살아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교회의 중심에 서야 합니다. 복음이 흐려진 상태에서 아무리 많은 활동을 시작해도 참된 영적 갱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전에 자신에게 맡겨진 영원한 복음을 다시 확신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3. 성도 개인의 거룩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상태는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삶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새로워지기를 기도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에는 소극적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속화되었다고 염려하면서 자신은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고, 성도들 사이에 사랑이 없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으며, 교회의 영적 침체를 비판하면서 개인적인 말씀과 기도에는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우리 자신이 그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참된 경건은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종교적인 언어나 외적인 활동으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선택하는지, 자신에게 불리할 때에도 진실하게 행동하는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지,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경건하게 보이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에 민감한 만큼 자신의 교만과 위선, 탐욕과 무관심도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면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말한다면 그 증언에 얼마나 큰 힘이 있겠습니까? 정직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정직을 가르치고, 사랑이 없는 성도가 사랑의 복음을 전하며, 세상의 성공과 인정에 사로잡힌 교회가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라고 권면한다면 그 말은 쉽게 공허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복음을 믿는 성도들의 삶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여기서 거룩한 삶을 인간의 결심이나 자기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죄를 이기고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신자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죄와 싸우며 성장합니다. 참된 경건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신자인지 증명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여 그분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죄 가운데 그대로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통해 거룩함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또한 우리의 충성은 어떤 교단이나 지도자, 신앙적 집단에 대한 소속감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향한 충성이어야 합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성경의 진리를 외면하거나 죄를 묵인해서는 안 됩니다. 참된 경건은 때로 익숙한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기 위해 용기 있게 행동하도록 요구합니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단순히 자신의 편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사랑하고 그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란다면 그 기도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교회를 새롭게 해 달라고 구하면서 자신은 변화되기를 거절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죄를 이야기하기 전에 자신의 죄를 살피고, 다른 사람에게 회개를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부흥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드러내 주시고, 회개할 마음과 순종할 능력을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교회의 참된 힘은 세상적인 영향력이나 조직의 크기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교회 안에 세워질 때, 그 교회는 세상 가운데 복음의 빛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4. 가정에서 신앙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교회의 부흥은 예배당 안에서만 확인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자리에서도 그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주일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집에서는 쉽게 분노하고, 교회에서는 사랑을 강조하면서 가족에게는 거친 말을 하며, 다른 사람의 자녀를 위해 기도하면서 정작 자신의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는 소홀하다면 우리의 신앙은 중요한 부분에서 힘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은 신앙을 말로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실제로 보여 주는 자리입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성경에 관해 무엇을 말하는지만 듣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부모가 누구를 의지하는지, 실수했을 때 어떻게 잘못을 인정하는지, 가족에게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을 표현하는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지켜봅니다. 부모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가르쳐도 그 말씀과 삶이 계속 어긋난다면 자녀들은 신앙에 대해 혼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완전하지 않은 부모라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가족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자녀들은 복음이 실제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현실을 염려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기 전에 가정에서 무엇이 사라졌는지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가족이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 있습니까? 자녀들은 부모의 삶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와 죄를 미워하는 마음,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까? 세상의 가치관이 자녀들의 마음을 형성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교회의 짧은 교육 시간만으로 신앙이 세워지기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정예배와 성경교육은 이런 의미에서 소중합니다. 가족이 함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시간은 자녀에게 신앙을 전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예배를 복잡한 형식이나 지나치게 높은 기준으로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짧은 말씀 한 부분을 함께 읽고 그 뜻을 이야기하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작은 시간도 귀한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이 주일의 활동으로만 남지 않고 가정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의 경건이나 가정교육이 자녀의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자녀를 거듭나게 하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그렇다고 부모에게 맡겨진 말씀 교육과 신앙의 본을 보이는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녀의 마음을 바꿀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자녀가 잘못했을 때 사랑으로 훈계하고, 부모 자신이 잘못했을 때에도 진심으로 사과하며, 삶의 크고 작은 문제 앞에서 함께 하나님의 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것과 가정에서 복음을 가르치는 일은 서로 경쟁하는 사역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존중받고 믿음과 사랑이 자라갈 때, 그 가정은 이웃에게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드러내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다음 세대의 부흥을 원한다면, 먼저 가정에서 복음이 들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드러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부흥을 위해 큰 집회를 계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 가족과 함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작은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공적인 사역뿐 아니라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의 순종도 사용하십니다.
5.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는 신실한 성도들이 필요합니다
교회에는 뛰어난 설교자와 열정적인 지도자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영적 생명이 한 사람의 능력이나 인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다면 심각한 위험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떠나거나 사역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교회 전체가 흔들린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 위에 교회를 세우고 있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목회자의 은사와 수고는 감사히 받아야 하지만, 신자의 믿음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참으로 강한 성도는 언제나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훌륭하게 말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법을 배우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도 말씀을 붙들며, 어려움 속에서 쉽게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신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작은 일에 충실하고, 시험 가운데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삶을 통해 성숙해집니다.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만 열심을 내는 신앙은 쉽게 소진될 수 있지만, 은밀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자신을 붙들어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왕에게서 재물을 받지 않겠다고 거절한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창 14:21–23). 그는 소돔 왕이 자신을 부유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왕 앞에서도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앞세웠던 아브라함의 모습에는 세상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영적 품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사람은 사람의 인정과 보상에 자신의 삶을 맡기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을 감사히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믿음과 양심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존 녹스와 엘리야처럼 하나님 앞에서 담대했던 사람들의 영적 힘도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데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았고, 그분의 말씀과 약속을 의지했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위협 앞에서도 쉽게 굴복하지 않는 용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나옵니다. 이러한 영적인 담대함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아 가고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며 살아온 오랜 믿음의 열매입니다.
우리도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나를 격려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때에도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존경하던 지도자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거나 내가 속한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습니까? 교회의 여러 활동에 참여하는 일과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으로 믿음을 지키는 일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은밀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공적인 사역을 지탱해야 합니다.
이러한 성도들의 삶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복음의 아름다움을 보여 줍니다.
한 사람이 이웃집에 사는 그리스도인을 오랫동안 지켜보았습니다. 그 이웃은 거리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꾸준히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그저 특이하게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람의 삶에는 자신에게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정에는 따뜻한 사랑과 질서가 있었고, 아내와 자녀들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는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침착했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에도 인내했습니다. 정직하고 친절했으며, 사람들을 진실하게 대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은 점점 궁금해졌습니다.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살아가게 하는가? 자신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도 어떻게 저런 태도를 가질 수 있는가? 그는 결국 이웃의 삶을 지탱하는 믿음의 비밀을 알고 싶어 했고, 그 일을 계기로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에게 복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유명한 설교자의 웅변이 아니라 한 신자의 꾸준하고 신실한 삶이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동이 복음의 선포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회심은 성령께서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의 삶이 그 복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 증언은 힘을 잃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씀에 순종하는 한 신자의 꾸준하고 성실한 삶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믿는 그리스도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유명한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에 충실한 성도들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영적인 힘은 뛰어난 사람 몇 명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깊이 뿌리내린 신실한 성도들의 삶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의 인정을 받는 성공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결론. 부흥을 구하기 전에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흔히 부흥이 어디에서 일어날 것인지 궁금해합니다. 어떤 지역에서, 어떤 교회에서, 어떤 설교자를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나타날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회에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우리는 그 은혜를 얼마나 진지하게 구하고 있으며 그분의 말씀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령의 능력을 구하면서 정작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복음의 진리를 지킨다고 말하면서 그 진리에 순종하는 삶에는 무관심하지 않습니까? 교회의 거룩함을 위해 기도하면서 자신의 죄는 쉽게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음 세대의 신앙을 걱정하면서 가정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일에는 소홀하지 않습니까? 교회의 훌륭한 지도자를 바라면서 정작 자신은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서는 성도가 되기를 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참된 부흥은 화려한 집회나 특별한 분위기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 있는 역사와 분명한 복음의 선포, 성도들의 거룩한 삶과 새로워지는 가정, 그리고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는 신실한 성도들의 모습으로 그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가 이러한 은혜를 경험할 때 세상은 종교적인 열기에 잠시 관심을 갖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에 능력을 더하시고, 죄인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오며, 성도들과 가정이 새로워지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규모가 작은 기도회라도 소중히 여기고, 응답이 더딜 때에도 인내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과 순종의 자리에서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우리의 일상적인 신앙생활과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새롭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우리 자신이 말씀 앞에 새로워지기를 구해야 하고, 이웃의 회심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책임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가 다시 살아나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구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가정에서 믿음을 실천하고, 사람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도 신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을 거듭나게 할 수 없고, 성도를 거룩하게 만들 수 없으며, 교회에 부흥을 가져올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성령으로 이러한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사실이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잠시 타올랐다가 사라지는 불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깊이 뿌리내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성령께서 교회를 지속적으로 새롭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부흥을 사모한다면 먼 곳에서 일어날 특별한 사건만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의 교회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일은 언제나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사모하는 교회는 결코 기도를 가볍게 여기거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뒤로 미루지 않습니다.
주님, 저희 교회를 다시 살려 주십시오. 그리고 그 부흥을 구하는 저희 자신부터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원문 및 편집 안내
찰스 H. 스펄전(Charles H. Spurgeon), 「5 Kinds of Revival the Church Needs Today」, Monergism 수록.
원문: https://www.monergism.com/5-kinds-revival-church-needs-today
이 글은 스펄전의 설교에서 강조하는 다섯 가지 주제, 곧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 복음 교리의 회복, 개인 경건의 회복, 가정 신앙의 회복, 하나님께 헌신한 성도들의 영적 능력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연구·묵상용 읽기 자료입니다. 설교 전문의 직역이 아니라 핵심 논증과 사례를 보존하면서 현대 교회와 성도의 신앙생활에 적용하도록 작성한 요약·해설입니다.
부흥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