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교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배우며,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돌보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자기 안에서 누리는 은혜와 유익에만 만족한다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그들을 세상 가운데 보내어 복음을 증언하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참된 부흥은 이러한 사명을 새롭게 깨닫게 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교회를 깨우실 때, 성도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함께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도 회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할수록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흥과 선교를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선교는 부흥이 일어나야 비로소 시작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교회에 맡기신 사명입니다. 부흥은 교회가 그 사명을 새롭게 깨닫고 더욱 충실하게 감당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1. 부흥은 먼저 교회를 복음 앞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교회가 새로워진다는 것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하거나 종교적인 열정을 높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신의 죄를 새롭게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더욱 깊이 의지하며, 믿음과 사랑과 순종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팀 켈러는 『센터처치』에서 부흥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복음의 갱신은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재발견입니다.” 1

복음은 교회가 이미 알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복음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선행이나 종교적 열심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입으로는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고백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자신의 신앙생활이 충분히 훌륭해야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영적 교만에 빠지거나 반대로 끊임없는 불안과 정죄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리처드 러블레이스는 『영적 생명력의 역동성』에서 이러한 문제를 깊이 다루었습니다. 그는 참되고 지속적인 영적 갱신을 위해 신자들이 자기 행위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 위에 삶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교회 안에서 순수하고 지속적인 영적 갱신이 일어나려면 많은 사람이 이 기초 위에 자신의 삶을 세워야 합니다.” 2

여기서 말하는 기초는 우리의 신앙적 성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감사와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흥은 성도들이 이 진리를 머리로 아는 데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삶에서 더욱 깊이 붙들게 합니다.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욱 귀하게 여기며, 형식적인 예배와 습관적인 기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진실하게 찾게 됩니다.

켈러 역시 부흥을 성령의 통상적인 사역이 말씀과 기도와 성례라는 은혜의 방편을 통해 더욱 강력하게 나타나는 때로 설명합니다. 부흥의 중심에는 새로운 비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교회에 주신 복음과 은혜의 방편이 있습니다.

러블레이스는 이러한 갱신의 열매로 기도, 성도의 교제, 선교적 관심, 신앙과 삶의 통합을 강조합니다. 복음으로 새로워진 교회는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성도들 사이의 관계와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변화를 나타내야 합니다.

참된 부흥은 단지 사람들의 감정을 뜨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교회의 삶을 더욱 깊이 변화시키는 역사입니다.

2. 갱신된 교회는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앤드류 머리는 『선교 문제의 열쇠』에서 당시 세계 선교가 충분히 진전되지 못하는 이유를 질문했습니다. 그는 선교사와 재정의 부족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 주목했습니다. 바로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 자체의 영적 상태였습니다.

그는 선교 문제의 핵심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습니다.

“교회 전체의 낮은 영적 상태.” 3

머리는 많은 신자가 자신의 구원과 영적 유익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신 더 큰 목적에는 충분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구원만을 생각하는 데 만족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목적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3

그가 우려한 것은 개인의 구원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도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에는 무관심한 신앙이었습니다.

러블레이스도 『갱신을 삶의 방식으로』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와 선교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우리는 선교를 향한 이 외향적 움직임을 따르지 않고서는 그분과 참으로 가까이 머물 수 없습니다.” 4

이 말은 선교 활동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조건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깊어질수록 그분께서 사랑하시고 구원하기 원하시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죄인을 찾아오셨고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면, 그분을 사랑하는 교회가 세상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도행전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말씀과 기도와 성도의 교제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예루살렘 안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박해로 흩어진 신자들은 다른 지역에서도 말씀을 전했고(행 8:4), 안디옥에는 여러 배경의 사람들이 함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후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행 13:1–3).

물론 모든 성도가 같은 방식으로 선교에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먼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어떤 사람은 지역교회를 섬기며, 어떤 사람은 기도와 후원으로 선교사를 돕습니다. 가정과 일터에서 복음을 증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 역시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책임입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은사와 역할이 있지만, 교회 전체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제자들이 세워지는 일에 함께 참여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3. 기도하는 교회에서 보내는 교회로

부흥과 선교의 관계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는 18세기 영국 침례교의 기도운동과 근대 선교운동의 발전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747년에 출판된 『기도합주회』에서 여러 지역의 신자들이 연합하여 기도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가 책의 제목에 밝힌 기도의 목적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신앙의 부흥과 이 땅에서 그리스도 나라의 확장.” 5

에드워즈에게 부흥을 위한 기도는 특정 교회나 지역의 영적 활력을 회복하는 데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복음이 여러 민족 가운데 전파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이러한 연합기도 사상은 후대 영국 침례교 목회자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1784년 존 서트클리프는 침례교회들이 매월 첫째 월요일에 함께 기도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교회와 목회자들 위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죄인들이 회심하며, 성도들이 굳건해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기를 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도회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특별히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여러분 자신의 교회나 교단에만 한정하지 마십시오.” 6

그는 가장 먼 지역까지 복음이 전파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자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에게 교회의 부흥과 세계 선교는 서로 떨어진 기도 제목이 아니었습니다.

이 기도운동에 참여한 인물들 가운데 윌리엄 캐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1792년 『탐구』를 출판하여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이 오늘날의 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과 복음 전파를 위한 인간의 책임이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캐리는 기도와 실천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얻기 위한 방편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기도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7

이 말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은 교회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선포와 기도, 선교사의 헌신과 교회의 협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캐리와 동료들은 기도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1792년 침례교 선교회를 설립했고, 캐리는 1793년 인도로 떠났습니다. 선교를 위해 사람을 보내고 재정을 마련하며 지속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을 찾은 것입니다.

물론 근대 선교운동의 발전을 기도회 하나의 결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에드워즈의 연합기도 사상, 서트클리프의 기도운동, 캐리의 선교적 실천 사이에는 분명한 역사적 연결이 있습니다.

이 역사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발견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그 기도는 우리의 책임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편을 더욱 성실하게 감당하도록 이끕니다.

부흥을 구하는 기도는 자연스럽게 복음의 확장을 구하는 기도로 이어져야 하며, 그 기도는 실제적인 순종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4. 선교의 열매는 사람을 얻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선교의 열매를 생각할 때 우리는 종종 회심자 숫자나 교회 성장, 선교사 파송 실적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복음 전파의 목적은 단지 사람들에게 신앙적인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말씀으로 양육하며, 그들이 믿음과 사랑 안에서 성장하도록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베풀며, 자신이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8:18–20). 복음을 듣고 믿는 일은 제자도의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한 지역을 다시 방문하여 제자들을 굳게 하고, 교회마다 장로들을 세웠습니다(행 14:21–23).

러블레이스는 복음의 증언과 그리스도인의 삶 사이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회심자들은 개인의 논증보다 삶 전체에서 드러나는 복됨을 통해 더 많이 얻어집니다.” 2

이 말은 복음을 말로 전하는 일이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누구시며 무엇을 행하셨는지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삶이 그 메시지와 모순된다면 사람들은 그 증언을 신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도들의 정직함과 겸손,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모습,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을 돌보는 사랑은 복음의 능력을 보여 주는 중요한 증언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선행이 그 자체로 복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은 말로 분명하게 선포되어야 하며, 그 복음을 믿는 사람들의 삶에서도 그 진리가 드러나야 합니다.

러블레이스는 영적 갱신의 열매 가운데 교회가 복음의 본질과 자기 문화의 관습을 구별하는 능력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은 특히 다른 민족과 문화를 섬기는 선교에서 깊이 생각할 문제입니다.

선교사는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자신의 언어와 문화, 익숙한 교회 관습까지 모두 복음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의 진리는 충실하게 지키면서도 현지 사람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존중해야 합니다. 선교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을 우리와 똑같은 문화적 모습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따라서 건강한 선교는 복음의 선포와 제자훈련, 지역교회의 설립과 성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선교사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계속 의존하도록 만드는 대신, 성경을 배우고 스스로 교회를 섬기며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부흥의 선교적 열매도 이러한 기준으로 살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한때 모였는가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말씀 안에서 성장하고 서로 사랑하며 세상 속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5. 부흥과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부흥을 구하고 선교에 힘써야 합니까? 더 큰 교회를 만들거나 선교적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그분을 알고 사랑하며 예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존 파이퍼는 『열방이 기뻐하게 하라』를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선교는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예배가 그렇습니다. 선교가 존재하는 것은 예배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8

이 말은 선교의 중요성을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교가 향하는 더 크고 영광스러운 목적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선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열매입니다.

파이퍼는 이어서 말합니다.

“예배는 선교의 연료이자 목표입니다.” 8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고 예배하는 교회는 다른 사람들도 그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동시에 선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그분을 경배하는 백성이 되게 하는 일을 목표로 합니다.

시편 67편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나타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자기 백성의 복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온 땅에 알려지고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소망은 요한계시록 7장 9–10절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큰 무리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 앞에서 구원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구원의 완성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부흥과 선교는 모두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흥은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깊이 알고 사랑하도록 새롭게 하시는 역사이며, 선교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여러 민족에게 전파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세워지는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는 것을 더 기뻐해야 합니다. 자신의 성장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교회들이 세워지고 성숙해지는 것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을 구하고 선교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결론. 은혜를 받은 교회는 세상을 향합니다

참된 부흥을 사모하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새롭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자기 교회의 형편이 좋아지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복음을 더욱 깊이 알고 서로 사랑하며,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세우게 되기를 구합니다.

우리는 특별한 부흥이 일어날 때까지 선교를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은 오늘도 계속해야 할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사역 가운데 성령께서 더욱 풍성하게 역사하시어 많은 죄인이 회심하고 교회가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에드워즈는 교회의 부흥과 그리스도 나라의 확장을 위해 기도하도록 권면했습니다. 서트클리프는 기도의 지평을 자기 교회에서 먼 나라의 사람들에게까지 넓혔으며, 캐리는 그 기도를 실제적인 선교 활동으로 연결했습니다. 오늘의 교회도 같은 은혜를 구하고 같은 사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흥은 교회를 자기 자신에게 더욱 몰두하게 만드는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귀하게 여기며, 그 복음을 아직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새롭게 하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새로워진 교회가 세상을 향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 교회가 사랑하게 된 주님께서 이미 세상을 향해 자신의 백성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