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의 권위, 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과 그리스도의 대속을 강조합니다. 바른 교리를 배우고 보존하는 일은 교회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됩니다. 교회가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가르친다는 사실이 그 교회의 실제적인 영적 갱신까지 보장할까요?
교회는 건전한 신앙고백과 체계적인 교리교육, 질서 있는 예배를 갖추고도 영적으로 침체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구원에 관한 교리를 정확하게 설명하면서도 기도에는 소홀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서로의 삶에는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선교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실제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소극적일 수 있습니다.
교회사가 리처드 러블레이스(Richard F. Lovelace, 1930–2020)는 이러한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영적 생명의 역동성』(Dynamics of Spiritual Life, 1979)에서 영적 갱신을 특별한 부흥 사건으로만 다루지 않고, 복음이 개인과 교회 공동체의 삶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새롭게 하는지 탐구했습니다. 그의 관심은 교회의 외적인 활동을 늘리는 것보다, 이미 주어진 복음의 진리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신앙과 실제 생활에 깊이 적용되는 데 있었습니다.
러블레이스의 신학은 이후 잭 밀러의 제자훈련과 팀 켈러의 복음 중심적 목회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후대의 목회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과, 그 사상이 교회의 실제 생활에서 충분히 구현되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제러미 린네먼은 2024년 목회학박사 학위논문에서 바로 이 문제를 연구했습니다. 그는 러블레이스의 갱신신학과 사도 바울의 영적 성장에 관한 가르침, 교회 조직문화에 관한 연구를 검토한 뒤, 미국의 개혁주의 전통에서 활동하는 목회자와 기독교 사역 지도자 6명을 심층 면담했습니다. 참여자들은 모두 40~55세 남성으로, 개혁주의 신학교육을 받았으며 적어도 10년 이상 사역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무작위로 선정된 표본이 아니라 연구자가 이전부터 알고 있던 지도자들 가운데 연구 목적에 적합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선정한 표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연구는 개혁주의 교회 전체의 실태를 통계적으로 보여 주는 연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목회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들의 진술을 통해 영적 갱신의 신학과 실제 사역 사이의 관계를 깊이 살펴보는 질적 연구입니다.
연구 결과에는 긍정적인 면과 아쉬운 면이 함께 나타났습니다. 참여한 지도자들은 복음과 성화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공동기도의 실제적인 문화, 성령의 사역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 특별한 부흥을 향한 관심에서는 러블레이스가 강조했던 내용과 일정한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이 연구의 가치는 모든 개혁주의 교회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단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바른 신학이 실제로 교회의 삶을 형성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데 있습니다.
1. 영적 갱신은 어디에서 시작되며,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러블레이스는 영적 갱신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신학적 요소를 하나의 체계로 연결했습니다. 그가 발전시킨 이 틀은 '영적 역동성'(Pneumodynamics)이라고 불리며, 전제조건과 주요 요소, 이차적 요소로 구성됩니다.
갱신의 전제조건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아는 것과 자신의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바르게 인식할 때 인간은 자신의 죄와 무능력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은혜가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알게 됩니다.
러블레이스는 칭의, 성화, 성령의 임재와 능력, 그리고 그리스도의 승리에 근거한 영적 싸움에서의 권세를 영적 갱신의 네 가지 주요 요소로 제시합니다. 이 요소들은 구원의 은혜가 신자의 삶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경험되며 적용되는지를 설명합니다. 특히 칭의와 성화는 서로 분리할 수 없지만, 결코 혼동해서도 안 됩니다. 신자는 자신의 거룩함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사람이기에 성령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러블레이스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관계를 실제로는 뒤집어 놓는다고 지적합니다. 교리적으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고백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자신의 경건과 순종, 영적인 성취를 근거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자격을 확인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실패할 때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불안해지고, 순종도 감사보다 두려움과 자기 증명에서 비롯되기 쉽습니다.
러블레이스가 칭의를 영적 갱신의 중심에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의 거룩한 삶은 그리스도의 은혜에 기초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진 신자가 그 은혜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러블레이스는 기도, 공동체, 선교, 신학적 통합, 탈문화화를 갱신의 이차적 요소로 구분합니다. 여기에서 이차적이라는 표현은 그 요소들이 덜 중요하다거나 주요 요소가 완성된 이후에만 나타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적 갱신이 개인의 내면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과의 교제, 교회의 공동생활, 복음 전파와 문화 속의 삶으로 확장되는 차원을 설명하는 구분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복음의 은혜에 뿌리를 둔 교회 전체의 갱신을 함께 보여 줍니다.
기도와 공동체와 선교는 이미 주어진 은혜에 대한 단순한 부가 활동이 아닙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의존하고 다른 성도들과 함께 성장하며 복음을 증언하는 통로입니다. 개인의 영적 갱신과 교회 공동체의 갱신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영적 갱신은 종교적 감정의 고조나 일시적인 열심으로 축소되지 않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믿음과 순종, 기도와 사랑, 공동체성과 선교적 헌신으로 드러납니다.
2. 복음 중심적인 신학은 실제 목회에 얼마나 뿌리내렸는가?
린네먼의 연구에서 가장 긍정적인 결과는 참여한 지도자들이 복음의 중심성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섯 명 모두 복음을 성도의 지속적인 영적 성장과 연결했고, 자신의 사역에서 복음을 어떻게 가르치고 적용하는지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러블레이스가 남긴 중요한 신학적 유산이 후대 목회에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러블레이스는 신자가 회심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복음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복음은 불신자를 회심시키기 위한 메시지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 실패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거룩한 삶을 추구할 때에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의를 의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강조는 잭 밀러의 목회와 Sonship 제자훈련, 팀 켈러의 복음 중심적 설교와 목회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린네먼의 면담에서도 일부 참여자들이 이러한 자료의 영향을 직접 언급했습니다. 특히 Sonship의 가르침은 성도가 자신의 영적 성장이 언제나 일정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신뢰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나 면담 참여자들이 러블레이스의 사상과 유사한 내용을 강조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모두 러블레이스의 저작을 직접 읽고 영향을 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린네먼은 직접적인 영향과 후대의 복음 중심적 목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진 영향을 함께 검토합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복음 중심성 자체가 교회 안에서 익숙한 용어로만 남을 가능성입니다. 복음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반복해서 가르치는 것은 필요하지만, 성도들이 실제로 그 복음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교회가 칭의를 정확하게 가르치면서도 실패한 사람을 쉽게 정죄한다면, 교리와 공동체의 생활 사이에 간극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면서도 사역은 사람들의 성취와 능력만으로 평가한다면, 그 역시 복음의 가르침이 충분히 적용되지 못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복음 중심적 목회는 복음을 이미 완성된 구호처럼 반복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진리가 교회의 설교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중요한 성취입니다. 그러나 그 진리가 성도들의 관계와 기도와 순종을 형성하도록 계속 가르치고 적용해야 합니다.
3. 기도의 중요성을 아는 교회는 왜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지 못하는가?
린네먼의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 가운데 하나는 기도에 관한 것입니다. 면담에 참여한 여섯 지도자 모두 깊이 기도하고 교회가 기도하도록 이끌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교회를 적극적으로 기도하는 공동체라고 설명한 사람은 한 명이었습니다.
이 결과는 연구 참여자들의 자기 보고에 근거한 것이므로, 다른 다섯 교회가 실제로 기도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도 시간이나 응답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측정한 연구도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의 중요성을 신학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교회 전체에 깊이 뿌리내린 기도 문화를 형성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러블레이스는 개인기도와 공동기도를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신자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야 하지만, 동시에 교회 전체가 하나님께 의존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 개인의 기도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성도들이 서로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함께 구해야 합니다.
러블레이스의 영향을 받은 잭 밀러와 팀 켈러는 기도를 설명하면서 '유지 기도'(maintenance prayer)와 '전선의 기도'(frontline prayer), 또는 특별한 기도를 구별했습니다.
유지 기도는 교회 내부의 필요와 일상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병든 성도의 회복이나 재정적인 필요, 교회의 일정과 사역을 위한 기도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정당하고 반드시 필요합니다. 문제는 교회의 기도가 내부적인 필요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에만 머무를 때 나타납니다.
전선의 기도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며, 성도들의 영적 갱신과 불신자의 구원을 간절히 구하는 기도입니다. 교회가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력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능력에 더욱 깊이 의존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구별은 두 종류의 기도 가운데 하나만 옳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교회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하나님께 무엇을 간절히 구하는지 돌아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린네먼의 면담에는 이러한 신학이 실제적인 생활로 연결된 사례도 등장합니다. 한 교회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하루 두 차례, 각각 5~10분 분량의 짧은 기도 방송을 제공했습니다. 성도들은 이를 들으며 함께 기도할 수 있었고, 지도자는 이 활동이 개인적인 영적 성장과 공동체의 유대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다른 교회는 예배 중 공동기도와 개인을 위한 중보기도, 정기적인 기도 모임을 통해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도록 도왔습니다. 이러한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방송이나 기도 모임의 형식 자체가 아닙니다. 교회가 기도의 중요성을 실제적인 습관과 공동체의 문화로 연결하려 노력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교회라면 기도의 필요성을 더욱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죄인을 거듭나게 하시고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며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기도를 통해 부흥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영적 생명과 갱신을 하나님께서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4. 교회는 왜 서로를 변화시키지 않는 관계에 만족하는가?
러블레이스는 영적 갱신을 지나치게 개인적인 문제로 이해하는 태도를 경계했습니다. 신앙은 개인적이지만 결코 개인에게만 속한 일이 아닙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로서 다른 성도들과 함께 자라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린네먼의 연구에서도 공동체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여러 사례가 나타납니다. 한 지도자는 한 지역에 오랫동안 머물며 형성한 신뢰와 우정이 교회의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지도자는 성찬이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교제뿐 아니라 서로의 연합을 기억하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한 참여자는 죄를 안전하게 고백할 수 있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안전하다는 말은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묵인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진실하게 인정하며, 복음의 은혜 안에서 회개와 회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단순한 친목과 다릅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뿐 아니라, 필요할 때는 말씀으로 권면하고 죄에서 돌이키도록 돕는 책임까지 포함합니다.
린네먼은 이러한 문제를 설명하면서 러블레이스가 지적한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의 '암묵적인 타협'을 소개합니다. 러블레이스에 따르면 목회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의 변화를 이끄는 일에 대한 관심을 잃고, 성도들은 목회자의 지위와 사역을 인정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깊이 간섭받지 않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불편한 회개와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성도들은 자신의 은사와 책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교회를 섬기지 않는 상태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목회자는 존경받는 종교적 전문가가 되고, 교인들은 말씀의 가르침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생활방식을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질서 있고 평화로운 교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성도들의 실제적인 변화와 성숙은 약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러블레이스가 비판한 것은 교회의 안정이나 질서 자체가 아닙니다.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희생하면서 유지되는 안정, 그리고 서로에게 회개와 순종을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얻는 편안함입니다. 이것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특별히 중요한 경고입니다. 목회자는 설교를 통해 말씀을 전달하는 역할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의 삶을 사랑으로 살피고, 복음에 따라 회개와 믿음과 순종을 권면해야 합니다. 동시에 성도들도 목회자에게 모든 사역을 맡겨 놓고 수동적으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이러한 권면은 목회자가 성도들의 개인적인 삶을 부당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교회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으며, 목회적 권면 역시 사랑과 겸손과 성경적인 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된 공동체의 갱신은 서로의 삶에 무관심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지배하지 않는 관계를 요구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함께 의지하고, 서로의 짐을 지며,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은사로 다른 지체를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건강은 갈등이 전혀 없다는 사실보다, 복음 안에서 진실하게 서로를 사랑하고 함께 변화되어 가는가를 통해 살펴야 합니다.
5. 영적 갱신은 어떻게 선교와 연결되는가?
러블레이스는 영적 갱신이 교회 내부의 경건과 친밀함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지고 성도들 사이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 변화는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에게 선교는 영적 갱신과 분리된 별도의 교회 프로그램이 아니라, 복음으로 새로워진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표현입니다.
린네먼의 연구에서도 선교에 대한 관심은 여러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어떤 지도자는 지역사회의 필요를 위해 봉사하는 활동을 강조했고, 다른 지도자는 신자들이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신앙을 실천하도록 돕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또 다른 지도자는 해외 선교사를 준비시키고 파송하는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한 목회자는 자신의 교회가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시기에 지역사회를 향한 관심도 함께 깊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교인들이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새로운 기쁨과 활력을 경험하면서, 그 변화가 이웃을 향한 섬김과 관심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 갱신과 선교가 서로를 강화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복음의 은혜를 깊이 깨달은 성도들은 그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며, 선교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다시 자신의 무능력과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선교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것과 교회가 실제로 선교하는 공동체라는 것은 다릅니다. 린네먼의 면담에서도 선교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성도들이 실제로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체계와 문화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선교를 강조하는 설교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가정과 직장, 지역사회에서 복음을 증언하도록 준비시키고, 다른 문화권에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양육하고 파송하며, 이웃을 향한 실제적인 사랑을 실천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러블레이스가 선교와 관련하여 강조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탈문화화'(disenculturation)입니다. 그는 교회가 자신이 속한 문화의 영향을 받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첫째는 '파괴적인 문화 동화'(destructive enculturation)입니다. 교회가 주변 세속 사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면서 복음의 진리와 거룩한 삶에 대한 요구를 약화시키는 현상입니다. 러블레이스는 고린도 교회가 주변 문화의 부도덕한 관습과 사고방식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했던 일을 이러한 문제의 성경적 사례로 제시합니다.
둘째는 '보호적인 문화 동화'(protective enculturation)입니다. 이것은 세속 문화에 동화되는 것과는 반대로, 교회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형성한 종교적 관습과 전통을 복음 자체와 동일시하는 현상입니다. 러블레이스는 갈라디아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유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유대교의 관습과 규례를 고수하려 했던 문제를 이러한 사례로 설명합니다.
두 번째 위험은 특히 정통신앙을 소중하게 여기는 교회에도 중요한 경고를 줍니다. 교회는 성경의 교훈을 충실하게 지켜야 하지만, 자신에게 익숙한 문화적 관습이나 인간이 세운 규칙까지 하나님의 명령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의 진리를 보존하려는 열심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면, 오히려 특정한 문화와 종교적 전통에 복음을 가두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러블레이스가 말하는 탈문화화는 이러한 두 가지 속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교회의 정체성과 삶의 중심에 다시 세우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모든 문화를 거부하거나 문화와 단절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복음의 진리에 비추어 문화적 관습을 분별하고, 필요할 때는 거부하거나 수정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방식으로 문화 속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원리는 선교에 특별히 중요합니다. 복음이 특정한 민족이나 사회의 관습과 지나치게 결합되면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물이 생깁니다. 러블레이스는 사도행전 10–15장에서 초대교회가 유대인의 문화적 경계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과정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교회가 문화적 경계와 복음의 본질을 구별했기 때문에 복음은 다양한 민족에게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선교적 갱신은 세상의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자신에게 익숙한 문화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의 권위를 지키면서 인간이 만든 문화적 장벽을 분별하고, 복음이 다양한 문화 가운데 충실하게 전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6. 교회의 갱신은 프로그램과 조직문화만으로 이루어지는가?
린네먼의 연구에서 독특한 부분은 영적 갱신을 교회의 조직문화와 연결하여 검토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교회가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신학적 가치들이 어떻게 공동체의 실제적인 생활과 습관으로 자리 잡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교회가 특정한 가치를 반복해서 강조하더라도 그 가치가 반드시 공동체의 문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설교하지만 실제적인 사역의 결정에서는 기도보다 효율성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사랑을 강조하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문화는 공식적인 신앙고백뿐 아니라 지도자들이 보여 주는 본보기, 성도들이 반복적으로 참여하는 활동, 서로를 대하는 방식, 공동체가 실제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의해 형성됩니다.
린네먼은 목회자의 설교가 이러한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한 면담 참여자는 설교가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로 교회의 모든 성숙이 완성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말씀의 선포와 함께 기도와 예배, 성례, 다른 목회적 돌봄이 교회의 영적 성장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특별히 중요합니다. 개혁주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믿음을 일으키시고 자라게 하시는 통상적인 은혜의 방편으로 말씀과 성례와 기도를 강조합니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88문은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유익을 전달하시는 외적이고 통상적인 방편으로 말씀과 성례와 기도를 제시합니다.
이러한 방편들은 단순한 종교적 관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에 따라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양육하시기 위해 주신 수단입니다. 말씀의 선포를 통해 복음을 듣고, 성례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눈에 보이는 표로 확인하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가르침받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방편이 그 자체로 자동적인 효력을 가진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성령께서 그 방편을 사용하여 믿음을 일으키시고 강화하시며 성도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편집자 해설 — 개혁주의 은혜의 방편] 앞 문단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 관한 설명은 논문에서 관찰한 면담 결과를 넘어, 교회의 영적 갱신을 개혁주의 신앙고백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입니다. 따라서 영적 갱신을 위한 교회의 책임은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조직문화를 설계하는 것으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명하신 은혜의 방편을 신실하게 사용하고, 성도들이 그 안에서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조직문화에 관한 연구가 제공하는 유익은 이러한 은혜의 방편을 대체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자신이 고백하는 신학적 진리를 실제 생활에서 소홀히 하지 않도록 살피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공동기도가 약화되었다면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도록 가르치고 기도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삶에 무관심하다면 교제와 권면, 돌봄의 책임을 다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선교의 실제적인 참여가 부족하다면 복음을 전하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실제적인 책임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부흥의 결과를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은혜의 방편을 신실하게 사용해야 하지만, 그 방편을 통해 생명과 성장을 일으키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7. 지속적인 성화와 특별한 부흥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린네먼의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약하게 드러난 부분은 성령의 사역과 특별한 부흥, 영적 싸움에 관한 강조였습니다.
참여자들은 모두 성령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으며, 일부는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는 사역과 영적 은사의 중요성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역을 설명하는 명료성은 복음의 중심성을 설명할 때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특히 러블레이스처럼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영적 갱신의 주요 요소로 체계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특별한 부흥의 경우에도 한 참여자만 러블레이스의 이해와 유사하게, 교회가 적극적으로 사모하고 추구해야 할 영적 갱신으로 부흥을 설명했습니다. 영적 싸움에 관한 러블레이스의 강조 역시 한 참여자의 응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다른 참여자들이 부흥이나 영적 싸움의 실재를 믿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연구자가 면담에서 확인한 것은 그들이 어떤 요소를 자신의 목회적 이해와 실천 속에서 적극적으로 설명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개혁주의 교회에 성령론이나 부흥론이 결여되어 있다는 확정적인 진단이 아니라, 복음 중심적인 신학이 성령의 사역과 교회의 갱신을 더욱 포괄적으로 설명하도록 발전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 제기로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 먼저 구별해야 할 것은 지속적인 성화와 특별한 부흥의 관계입니다. 성도의 성화는 성령께서 평생에 걸쳐 이루시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기도, 성례와 교회의 교제를 통해 성도들이 믿음과 거룩함과 사랑 안에서 자라가게 하십니다. 이러한 성장은 때로는 눈에 띄게 나타나지만, 때로는 오랜 인내와 싸움 속에서 서서히 이루어집니다.
반면 특별한 부흥은 성령께서 개인과 교회 공동체에 평소보다 두드러지고 광범위하게 역사하시는 시기를 가리킵니다. 평소에도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푸실 때,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고 회심하며, 성도들의 믿음과 기도와 사랑이 새로워지고, 복음의 증언이 활발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특별한 부흥은 평소의 성화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구원을 가져오는 사건이 아닙니다. 동일한 복음과 동일한 성령께서 개인과 공동체 가운데 더욱 두드러진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린네먼이 소개하는 팀 켈러의 부흥 이해 역시 이 관계를 강조합니다. 켈러는 부흥을 성령의 통상적인 사역이 특별히 강하게 나타나고, 은혜의 통상적인 방편을 통해 많은 사람이 새롭게 되는 시기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부흥을 지속적인 성화와 연결한다고 해서 부흥을 인간이 관리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과정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의 방편을 충실히 사용하면 반드시 일정한 시기에 특별한 부흥이 일어난다는 공식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아닙니다. 교회는 평소에도 성령의 역사에 의존하며 말씀과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로 교회를 새롭게 하시기를 간절히 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흥을 이해하려면 성령의 사역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께서는 어떤 비인격적인 능력이나 종교적 감정을 만들어 내는 힘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함께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죄인을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며, 믿음을 일으키고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깨닫게 하십니다. 또한 성도들을 하나의 몸으로 연합시키시고 각자의 은사로 교회를 섬기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재를 사모한다는 것은 성경의 진리와 무관한 특별한 감각이나 경험을 추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더욱 분명하게 알게 하시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도록 역사하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러블레이스와 린네먼은 이러한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면서 현대에도 초자연적 은사가 계속될 수 있다는 견해에도 긍정적입니다. 특히 러블레이스는 현대 은사주의 운동의 일부 측면을 수용했고, 린네먼도 그 전통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격과 능력, 그리스도의 구원을 적용하시는 사역을 강조하는 것과 현대 은사주의 운동의 모든 주장이나 현상을 수용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편집자 해설 — 성령론과 분별] 개혁주의 신학 안에서도 특정한 은사의 지속 여부에 대해서는 견해의 차이가 있습니다. 러블레이스의 갱신신학이 제공하는 중요한 통찰을 받아들이면서도, 현대 은사주의에 관한 그의 판단은 성경과 개혁주의 신앙고백의 관점에서 별도로 검토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의지하는 신앙과 성경적인 분별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자신의 말씀을 통해 일하신다는 믿음은 성경의 권위를 더욱 존중하게 하며, 그분의 주권적인 역사를 사모하는 마음은 교회를 더욱 겸손한 기도와 순종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결론. 복음의 진리와 하나님의 임재를 분리하지 말라
린네먼은 논문의 결론에서 러블레이스의 영적 갱신론이 오늘날 교회에 제공하는 중요한 통찰을 두 가지 관심으로 연결합니다. 하나는 복음의 진리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인들에게 베풀어지는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단순히 구원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도록 부름받습니다.
이 두 가지를 분리하면 교회는 서로 다른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교회는 복음의 교리적 내용을 정확하게 가르치면서도, 성도들이 하나님과 실제로 교제하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의지하는 삶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나 특별한 영적 경험을 강조하면서, 그 경험의 객관적인 토대인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경의 가르침을 약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러블레이스의 영적 갱신론이 강조하는 것은 이 둘의 결합입니다. 복음의 진리는 성령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마음과 삶에 깊이 적용되어야 하며, 성령의 사역과 하나님과의 교제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구속과 말씀의 진리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린네먼의 연구가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에 던지는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교회입니까? 그리고 동시에 그 복음의 은혜로 살아가는 교회입니까?
이 질문은 복음 중심적인 목회의 성과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미 확립된 신학적 토대를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키도록 요청합니다. 교회는 복음의 진리를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 회개하고 순종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개인적인 기도와 공동기도가 교회의 생활 가운데 자리 잡아야 하며, 성도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며 말씀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이러한 갱신은 교회 안에 머무르지 않고 이웃을 향한 복음 전파와 선교적 헌신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인간의 열심과 조직적인 전략으로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말씀과 성례와 기도, 교제와 섬김을 신실하게 수행할 책임은 분명하지만, 그 일을 통해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새로운 부흥 프로그램을 찾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주어진 복음과 은혜의 방편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개인과 공동체를 더욱 깊이 새롭게 하시기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복음 중심적인 신학은 그 자체로 귀중한 유산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신학을 소유하고 설명하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복음의 은혜가 기도와 거룩함, 공동체의 사랑과 선교를 통해 실제로 드러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부흥을 사모하는 교회가 가장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은 새로운 방법의 부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복음이 우리의 마음과 삶과 교회를 얼마나 깊이 다스리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 그리고 그 복음이 성령의 능력으로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기도하는 것이 영적 갱신을 향한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이 자료를 읽을 때
이 글은 제러미 린네먼의 2024년 목회학박사 학위논문을 바탕으로, 부흥과 영적 갱신에 관한 중요한 논점들을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재구성한 해설입니다. 논문에 등장하는 실제 면담 결과와 연구자의 신학적 해석을 토대로 작성했으며, 개혁주의 신앙고백과 은혜의 방편, 성령의 사역에 관한 일부 설명에는 편집자의 신학적 평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논문에서 관찰된 사실과 연구자의 판단, 편집자의 독립적인 신학적 설명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러블레이스와 린네먼의 현대 은사주의에 관한 견해는 그들의 입장으로 소개한 것이며, 이 자료가 그 견해 전체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이 연구는 미국의 개혁주의 전통에서 활동하는 지도자 6명을 대상으로 한 질적 연구입니다. 연구 결과는 모든 개혁주의 교회의 일반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통계가 아니라, 교회의 신학과 실제적인 사역을 성찰하도록 돕는 제한된 사례로 활용해야 합니다.
주요 참고 부분: 논문 11–29쪽(영적 갱신의 이론적 토대), 61–71쪽(연구방법), 72–100쪽(면담과 주요 결과), 103–118쪽(분석 및 목회적 제안).
신학교 소장 논문 PDF 원문 ↗
부흥 프로젝트